배 혜 경

스승은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배우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보통은 가르쳐주는 사람을 스승이라 부르지만, 가르침이 반드시 배움으로 연결되지 않으므로, 첫 문장의 정의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배움은 언제 가장 잘 일어날까요?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가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할 때 가장 잘 배우게 됩니다. 제가 과학을 가르치려고 할 때 과학이 무엇인지 배웠고, 제가 아이들에게 삶에서 중요한 점을 가르치려고 했을 때 인생에 대한 배움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는 스승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배움이 한 순간에 일어나거나, 의식에 들어왔다는 것이 배움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 같습니다. 아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배우게 하려면 일관성 있고, 장기적인 ‘환경’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것이 가르침과 배움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장기간에 걸친 일관성 있는 부모 또는 교사의 언행이 아이들의 배움의 환경입니다.

그런데 장기간 일관성 있는 언행을 하는 일은 거짓으로 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생각이 그러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진정으로 믿고,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환경 안에 놓인 아이들이 배웁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일의 첫 단계는 가르치는 사람의 생각의 변화입니다.

‘내 아이가 어떤 것을 배웠으면 좋겠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내가 먼저 배워 실행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부모 또는 교사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바로 잡아가는 것이므로, 부모나 교사가 배우는 과정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배우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