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이? |
배 혜 경 한동안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평범한 아이들의 부모님보다 평균을 훨씬 웃도는 아이들의 부모님 중에 아이의 성취가 아쉽다고 느끼시고, 아이를 더 다듬기 위해 분주하신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창문을 닦다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창문 닦는 일을 아주 싫어했었습니다. 창문을 닦는 일이 육체적으로 특별히 힘들기 때문은 아닙니다. 큰 창문의 한 쪽을 닦기 시작하면 아직 닦지 않은 부분의 지저분함이 아주 두드러집니다. 다 닦았다 싶더라도 어느 한 부분이 특히 깨끗하게 닦아졌으면, 나머지 부분이 또 지저분해 보입니다. 그 부분도 시작할 때보다 훨씬 깨끗해졌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다시 닦기 시작합니다. 때론 손에 상처가 생기는 지도 모르고 전념하거나, 난간에 매달려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모험도 감행합니다. 그래서 창문 청소는 더 이상 체력이 남지 않아 드러누워야 할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곤 창문에 때가 탈까봐 노심초사해집니다. 그러니까 창문의 전체를 완벽하게 닦는 일은 불가능하고, 창문의 특성상 부분적인 불완전함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글의 앞부분에서 언급한 뛰어난 아이의 부모님이 아이를 다듬는 일을 멈출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오히려 시작하기 전에는 아이가 전체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한 부분을 다듬고 그 부분에서 발전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부분이 모자라다고 크게 느껴지는 현상 말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만 다듬으면 완벽해질 것 같고, 그렇게 계속 힘이 더 이상 남지 않을 때까지 몰아가는. 그리고 그것을 멈추면 퇴보할 것 같아 두려워 노심초사하는. 저는 마음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완벽한 창문은 있을 수 없다고 믿고, 기대치를 낮추기로 하였습니다. 그러고 바라보니 군데군데 남아있는 얼룩들이 예술적으로 느껴집니다. 완벽한 부분들은 그것대로 쾌감을 줍니다. 완벽함의 노예에서 벗어나니 손에 상처가 생길 일도 없어졌습니다. 이젠 창문 닦는 일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