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혜 경

20여 년 전 저는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때에는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였습니다. 나름대로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를 피하려는 노력도 하였고, 그래서 쉴 새 없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보면 학생들의 성취가 제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거의 하얀 시험지의 맨 끝에 ‘교수님의 열정적인 수업에 제가 못 미쳐 죄송합니다.’라는 자기반성문이 달려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전문성을 키우겠다던 저의 열성은 일부 학생들에게 죄책감만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후 제가 어떤 점에서 모자랐는지 깨닫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학기에 제 건강이 아주 좋지 않아 2시간 이어지는 수업이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꾀를 내어, 30분 정도는 학생들이 채우는 묘안을 내었습니다. 매 주 한 조씩을 지정하여 그 전 주에 배운 주제에 대한 퍼포먼스 준비하도록 하고, 그것을 발표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매 주 화학 연극, 음악회, 개그, 퀴즈쇼, 등 다양한 형식으로 화학이 재현되었습니다. 그 학기를 마칠 즈음 학생들의 결론이 흥미롭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짧은 시간에 화학을 많이, 깊게 배웠다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참으로 황당한 반응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열성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때보다 제가 게으름을 피울 때 학생들이 더 많이 배운다니!

그 경험은 저로 하여금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깨우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학생들에게 하도록 한 프로젝트가 어떻게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도록 했는지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제 결론은 초기의 열성적 수업은 학생들의 ‘배움; 학(學)’만을 도왔을 뿐이지만, 그 프로젝트는 학생들에게 배운 것을 ‘익힘; 습(習)’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방법으로 ‘학’을 돕더라도, 그것이 ‘습’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진정으로 배우지 못합니다. ‘습’은 학습자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여러 상황에 적용해보면서 자신의 앎을 되돌아보고, 모자라는 점을 보완하여, 더 굳건한 앎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학습자 주도적이어야 하며, 적절한 시간이 허용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 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잘 설계된 상황(문제)이 주어진다면 ‘습’의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해 줄 것입니다.

‘습’의 과정을 도와주기 위한 설계된 상황(문제)의 질이 ‘습’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앞의 프로젝트는 open question(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 접근 방법에 따라 여러 답이 가능한 문제)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가 반드시 ‘?’로 끝날 필요는 없습니다. 학습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해야 하는 문제는 아주 높은 수준의 open question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학습자에게 높은 수준의 open question이 도움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질문은 open된 정도에 따라 여러 수준이 가능하며, 학습자의 수준에 따라 조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의 개방성이 커질수록 학습자의 자기 주도성을 더 많이 필요로 합니다. 아직 자기 주도적 ‘습’의 능력이 적은 학습자에게 아주 개방된 문제를 제시한다면, 그들은 오히려 좌절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라면 ‘학’의 과정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들을 확실히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문제, 또는 그것을 확장 응용하는 문제 수준으로 훈련하면서, 스스로 ‘습’ 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정리하자면, 진정한 배움에는 ‘학’과 ‘습’이 함께 필요합니다. ‘습’이 성공적이려면 학습자의 주도성이 기본입니다. 따라서 ‘습’을 위해서는 학습자의 수준에 맞고 발전적인 문제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를 읽자마자 정답지를 뒤적이는 아이는 주도성이 낮은 것이며, ‘습’을 할 시간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수학책에 있는 문제를 그대로 옮겨 적어오라는 수행 평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문제는 목표가 모호하고, 질이 낮은 문제로서, 그것을 하기 위해 쓴 시간 전부가 낭비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습’의 원리는 단지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종류의 배움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기 바란다면, 아이들에게 ‘습’을 위한 적절한 ‘문제’와 ‘시간’을 주고 있는 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