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희망을 파는 일인가? - 교육 상업화의 중심에 놓인 아이들 |
배 혜 경 영재학교나 과학고 등의 특목고를 진학하기 위해 많은 초등학생들이 어린 나이부터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입시이다 보니 아무래도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합격 가능성을 높일 것입니다. 그 방법 중 가장 흔히 선택되는 것이 학원과 같은 입시 전문 훈련 기관에 아이를 위탁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학교의 학생 수에 비해 너무 많은 아이들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학교에 입학하려고 목표를 잡는다면 그 시점에 아이의 학습 능력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습 능력이 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학습에 자신을 투여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는지도 문제가 됩니다. 두 가지를 고려해 볼 때 현재 그러한 학교의 입학을 목표로 사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절반 이상은 이미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섭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에 매달려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한 학부모님과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몇 해 전 그 분의 자녀가 중학교 2학년일 때 특목고를 목표로 올림피아드라는 대회에 나갈 준비를 할 때라고 합니다. 올림피아드 준비를 잘 해준다고 소문난 학원을 찾아 올해 수상이 가능할까 상담을 하였더니, ‘됩니다!’라고 장담하여 아이를 맡겼답니다. 그런데 그 해 입상을 하지 못했고, 학원을 찾아가 된다고 하더니 안 되었다고 불평을 하자, 학원 측에서 ‘내년에는 꼭 됩니다!’라고 하여 아이를 또 맡기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알기에 그 분의 자녀는 그 시점에 충분히 학습 능력이 되고, 노력을 할 마음가짐도 되어 있는 아이였습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자녀의 학부모님들도 학원 측으로부터 똑같은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결과는 해보아야 아는 것 아니냐. 우리 아이의 마음을 잡기 위해 좀더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학습 능력을 빨리 키우기 위해 더 일찍이 시키면 되지 않느냐? 그러니까 모든 아이들이 다 가능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라고. 이상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질적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아이의 마음을 어린 나이부터 잡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압력에 그런 척 할 수는 있으나, 그런 척 하는 것과 진정 그런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같이 있지 않다면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으로는, 특정 과목에 대한 아이들의 학습 능력은 대역이 아주 넓습니다. 하나를 던지면 10을 깨우치는 아이에서부터, 하나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 보통 아이의 10배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아이까지. 그리고 한 살 차이에서 평균 학습 능력은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는 절대로 학습할 수 없는 내용도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아이가 자신보다 10배 높은 학습 능력을 가진 아이와 같아지려면 10배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까 10배의 노력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그건 10배의 능력을 가진 아이가 크게 노력하지 않을 때는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 대부분도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런 아이들도 어린 나이부터 시작합니다. 이제 10살 정도인 우리 아이의 시작 나이를 10배 앞당길 수는 없는 일이며, 앞으로 당길수록 효율은 급감한다는 점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학부모님께서 제게 상담을 하시는 경우, 아이의 현재 학습 능력과 현재 마음가짐을 파악한 후, 아이에게 가장 적절한 시간 프레임을 제안해드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어떤 아이는 상당한 잠재력은 있지만 아이의 성격 상 급히 드러내고자 할 때 오히려 잠재력조차 무너뜨릴 위험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 조금 장기적인 프레임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고 제안 드리는 경우, 많은 학부모님들께서 절망적인 코멘트로 받아들이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짐작이지만 그런 제안을 받은 분 중 많은 분들이 ‘됩니다!’라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건네주는 교육 기관에 아이를 맡겼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그러한 교육 기관이 한 일은 학부모에게 희망을 파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교육기관이 교육과 함께 사업을 하는 곳이라면,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수요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그러한 단체가 공급하는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팔고 사는 교육 문화 안에서 많은 우리 아이들이 자신에게 적절치 않은 목표를 할당 받고, 그 길 위에 올려 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들의 마음은 절망으로 채워집니다. 어른들의 ‘희망 거래’에 아이들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듭니다. 결과가 이렇다면 어른들이 거래한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망상’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교육이 희망인 것은 교육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바르게 성찰하고, 자신에게 최선인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주체적으로 걸어갈 능력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망상의 교육’이 ‘희망의 교육’으로 바로 서려면 우리 어른들이 희망과 망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희망은 부모의 바람이 아니라 우리 아이의 능력과 한계를 근거로 하여야 합니다. 망상의 길 위에서 우리 아이들이 잃는 것은 아주 크고 소중한 것이며,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